손과 시간이 빚어낸 온도 맛있는 음식은 유난히 손이 많이 가서, 생일이라도 되는 날에는 전날 저녁부터 재료를 고르고 다듬어야 정갈하고 온전한 식탁이 완성되더라는 엄마로부터 온 경험. 정성스런 요리를 먹을 때 마다 갖은 찬과 요리를 만들어서 식탁에 내던 엄마의 손을 떠올리게 되죠. 그걸 정성이라 부른다는 걸, 왜 우리는 다 커서 남자친구를 위한 도시락을 싸며 내 서툰 손맛을 신경쓰면서야 깨닫게 되는지. 매일 대부분 간편한 것들의 홍수에서 헤엄치다가 어느 날엔가 엄마의 요리같은 정성스러움을 만날 때면 그게 그렇게 고맙고 귀해서, 계절의 낙엽을 책 사이에 갈피하듯 모아두곤 했어요. 그렇게 서랍 한 켠에 모인 꾹꾹 눌러쓴 손편지나 예쁜 포장지들, 내 마음을 건드렸던 책의 문장, 처음 받은 꽃 같은 것들... 그런게 누구에게나 있을거에요. 요즘 아무리 미니멀리즘 같은 것이 유행한다해도 버릴 수가 없는 것들 말이죠. 아니, 오히려 너무 많은 일회용들 사이에서 고요하게 빛을 발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런 것들은 '미니멀' 중의 '에센스' 같은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손이 하는 일일랑 차가운 것이 없고, 들인 시간칸큼 마음이 데워진다는 사실은 다소 분명합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결혼식에 우리가 염증을 느끼는 것도 우리가 그 온도에 목말라왔기 때문일거에요. 작은 카페들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장님의 취향이나, 단골인 나를 위해 부탁하지 않아도 늘 시럽은 좀 덜 타고 쿠키 하나쯤은 서비스로 옆에 내어주시는 일들의 경험은 우리를 좀 더 다정하게 만드니까요. 이름만 바꾸어 찍어내는 그 가벼운 작업은 너무 쉽게 가능한 일임과 동시에 마음을 빠르게 소진하는 일이어서, 정말 놀랍게도 종착지인 누군가의 손에서도 아주 쉽게 버려지거나 잊혀지고, 게다가 어떠한 '부담'으로까지 작용하는 종잇장이 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차갑고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온도'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자주 품을 들여 계절의 꽃과 풀잎을 사고, 보존화작업(프리저빙)을 거쳐 참 멋진 소식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수백장의 카드에 하나씩 계절의 조각들을 담아 시간과 마음을 들여 완성합니다. 계절의 조각들이 담겨 오래도록 누군가의 서랍에서 고이 존재하며 빛나게 될 일을 상상하면서요:)